[심층취재] 신생아 잇단 사망 '산후조리원' 르포


(2001.11.08.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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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평 공간에 신생아 16명…돌보는 보모는 2명뿐 ##
지난 5일 서울 성북구의 A산후조리원. 이 조리원은 목욕탕과 상가 건물 등이 즐비한 지역의 5층짜리 사무용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자리잡고 있다.

5층 한 쪽의 4평 남짓한 신생아실을 비롯, 외관상 산후조리원의 청결 상태는 완벽했다. 매일 1회 이상 알콜로 소독한다는 실내는 깔끔했고, 오존 살균기·공기 정화기 등이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엉뚱한’ 장면이 목격됐다. 보모 1명이 신생아실 왼쪽에 위치한 1m 너비의 개수대에서 신생아를 목욕시킨 지 10분쯤 후, 다른 보모가 이 개수대에서 별 생각 없이 아기 젖병을 씻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송파구 B조리원. 역시 상가 건물들이 늘어선 대로변에 위치한 이 조리원의 5평 남짓한 신생아실에는 16명의 아기가 폭 60㎝ 간격의 작은 칸막이로 구분된 원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조리원측은 11명의 보모가 3교대로 일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날 신생아실 근무조로 돼 있는 보모는 단 2명. 2명의 보모는 16명의 신생아를 돌보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전염된 듯 옆의 아이도 울음을 터뜨리고, 또 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다른 아이 기저귀를 갈고…. 보모들의 얼굴에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최근 들어 산후조리원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신생아 3명이 바이러스성 감염으로 보이는 구토 및 설사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고, 경기도 분당과 강원도 춘천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산후조리원을 거쳐간 신생아들이 기관지염 또는 장염 등의 집단 감염 증세를 보여 입원·치료를 받았다.

또 99년 8월에는 경기도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태어난 지 1주일 된 신생아를 뜨거운 욕조에 빠뜨려 전신 화상을 입히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들을 ‘예고된 사고’라고 단언한다. 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전문 의료 인력이 아예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산후조리원 근무 인력은 일반인이 66.5%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 반면, 간호사 21.3%, 의사 2%, 한의사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일산에 있는 산후조리원의 경우, 정식 간호사는 1명도 없이 간호조무사 1명과 일반인 5명이 신생아들을 돌봐왔다. ‘사임당 조리원’ 송파점 오춘선(35) 원장은 “간단한 병원 진료 기록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아기를 무턱대고 받아주는 산후조리원들이 많아 멀쩡한 신생아들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시설과 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신생아와 산모들을 수용하는 데다, 운영 자체도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다.

경기도 일산의 ‘아가랑 조리원’ 김정화(48) 원장은 “보통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주에 90만~100만원 정도인데, 고객인 산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설은 번듯한 경우가 많다”며 “문제는 세부 운영”이라고 지적했다.

이웃 일본은 산후조리원을 준의료기관으로 분류, 국가가 실시하는 조산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시설 허가를 내주고, 시설당 신생아를 9명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전국 산후조리원 수는 304개. 매일 수천명의 산모와 신생아들이 이곳을 찾지만 우리나라는 산후조리원이 의료기관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돼 있어 행정당국이 관리·감독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








입력 : 2001.11.08 19:06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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